피부일기 :: 함익병피부과 후기 (+나의 여드름 일대기)
피부 트러블, 여드름과 전쟁 중인 요즘.
사실 요즘 갑자기 뒤집어진 것은 아니고, 중학생 때부터 끈질기게 나를 괴롭혀왔던 일. 하지만 그냥 받아들이고 살기를 몇 십년. 오히려 성인이 된 후로 환절기마다 정말 대인기피증이 올 만큼 심각하게 뒤집어져서 사람 미치게 한다. 정말 지독한 여드름 놈들ㅇ_ㅇ
나의 여드름 역사 20년 스토리
1. 중학생 때 처음 만나 인연을 맺게 된 여드름. 그 때는 이마와 관자놀이 정도. 당시에도 분명 꽤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앞머리라는 무기로 가리고 다녀서 어느정도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17살에 중국에서 1년 정도 유학했는데, 당시에는 오히려 피부가 조금 나아졌던 기억.
2. 대학생이 되어도 나아질지 모르고 울긋불긋 여드름 4-5개 씩은 항상 달고 살았던 것 같다. 폭풍 지성의 가장 큰 단점이 여드름이라면, 그나마 꼽을 수 있는 장점은 피부재생력이 아닐까. 피부가 하얀 편이라 흉터가 도드라지긴 했지만, 발현되는 여드름 양 대비 무난한 피부를 유지했다. 그리고 화장을 배우면서 일상생활하는데 큰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가끔 피부관리실에서 압출이나 진정관리 받는 정도.
3. 25살, 회사에 들어가기 전 피부 전문 존스X 한의원에서 큰 맘 먹고한약 먹으며 여드름 관리를 했다. 결과는 대성공! 진짜 그 때 당시 피부로 돌아갈 수 있다면 너무 행복할 것 같다.... 내 여드름 인생 시작 후 가장 꿀피부인 것으로 기억되던 지난 날.
4. 회사란 돈을 버는 대신 건강을 잃는 곳이라 했던가. 입사 후, 찌들어가는 내 삶에 성인 여드름이 찾아왔다. 광대뼈와 턱라인, 귀 주변에 정말 크고 아픈 여드름이 자주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8살인가, 유럽여행 + 과로 + 스트레스 쓰리 콤보 맞고 얼굴 전체에 여드름 폭탄을 맞았다. 이전에 여드름 전문 한의원에서 효과본 것이 생각나서 검색을 통해 유명한 하늘X 한의원, 리X 한의원 등 3곳 정도를 전전했지만 이젠 약발이 떨어진 건지 잠깐 좋아지고 다시 화농성 여드름이 얼굴을 뒤덮어서 지쳐갔다.
5. 한의원은 물론이고, 일반 피부과에서 압출관리, 각종 레이저 패키지, 항생제, 여드름 연고, 천연 화장품, 식이요법, 각종 세안법, 그리고 최근에는 영양제까지. 정말 안해본 것 없다. 그나마 영양제가 가장 효과적이긴 했지만 연중 행사처럼 1년에 2-3번 정도 심각하게 뒤집어질 때는 멘탈이 탈탈 털려서 지속되지 못했다. 정말 로아큐탄 먹는 것 빼고는 다 해본 것 같다. 인터넷에 떠도는 무시무시한 이소트레티노인의 부작용 때문에 약 먹는 것 빼고는 다 해본 것 같다.
6. 인터넷에 떠도는 다양한 정보를 흡수하고, 기대하고, 경험하고, 실망하는 사이클을 반복한지 어언 4년차. 어찌저찌 결혼을 하고(결혼식 직전까지도 여드름 염증주사를 맞으며 엉엉 울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푹 쉬면서 나아질 줄 알았건만, 겉잡을 수 없을 만큼 피부가 또 뒤집혀버렸다. 집 앞 한의원에서 한약을 지어먹고 더더더 심하게 뒤집혀서 환불받고, 남편에게 쌩얼보이기도 민망한 수준이 되어버리자 하루하루가 너무 버겁고 힘들어서 매일 울기를 반복. 32살 가을, 결국 최후의 보루라고 여겼던 이소트레티노인을 먹기로 결심했다.
뭔가 장황하게 적긴 했는데... 이렇게 되돌아보니 내 인생 32년의 2/3를 함께했네. 여드름 때문에 한 2-3천은 충분히 쓰지 않았을까 싶다. 하 피부 좋은 사람들은 정말 돈 번거야........ 이제 결혼도 했으니 제발 이 지긋지긋한 여드름과 제발 좀 이별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같이 사는 사람이 생기니 더 그런 마음이 생기는 듯 ㅠㅠㅠ
아무튼 결론은, 간절한 마음을 붙잡고 함익병 피부과에 방문했다. 사실 로아큐탄은 다른 피부과에서도 처방해주긴 하지만, 기왕이면 로아큐탄 처방에 대한 지론이 뚜렷한 분에게 가보자는 생각으로 멀리 시흥에서 한티역까지 날아갔다.
함익병 피부과 첫 방문
- 월/화/금 10시 ~ 17시 (점심시간 없음)
- 토 9시 ~ 15시 (점심시간 없음)
- 수, 목, 일, 공휴일 휴무
- 예약 필요 없음. 선착순 진료.
내가 치료받고 싶어서 병원에 가는 것인데, 피부과 가는 일은 언제나 항상 떨리고 괴롭다. 누군가에게 내 피부를 온전히 보여주는 일은 정말 20년이 되어도 정말 쉽지 않다.ㅠㅠㅠ
점심시간이 따로 없는 특이한 진료시간. 게다가 수-목은 휴일이니 미리 영업시간 잘 확인하고 방문해야 한다. 함익병 선생님의 명성에 걸맞게 엄청 북적일 줄 알았는데, 내가 도착했을 당시 대기 인원은 1명이었다. 워낙 유명한 선생님의 진료 스타일. 환자 한 명 당 5분 내외라서, 대기가 생겨도 금방 금방 빠진다.
잠깐 대기하는 사이, 대기실에 놓인 함익병 선생님의 책, '피부에 헛돈 쓰지 마라'. 이경제 유투브에 나와서 피부에 돈 쓰지 말라는게 아니라 "헛돈" 쓰지 말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사실 함익병 피부과는 다른 피부과에 비해 꽤 비싼 편. 다른 피부과는 물론이거니와 어느 병원에 가도 처방해주는 약의 양이 많다고 진료비가 많이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이 곳은 약 처방해주는 양과 진료비가 비례해서 꽤 비싼 편이다. 보험도 안되는 여드름 치료비라 후덜덜하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여드름 치료를 위해 다른데 돈 안쓰고 여기에만 한 달에 10만원 정도 쓴다고 생각하면 엄청 비싼 비용은 아니라고 생각이 되었다. (이렇게 합리화)
함익병 피부과 진료 후기
역시나 소문대로 단호박같은 상담을 했다. 물어보고 싶은 것을 마음껏 물어보아도 되는 분위기임에는 틀림없지만, 질문할 때 내가 한 문장 이상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ㅋㅋㅋㅋㅋㅋㅋ 중간에 끊고 대답 해버리는 스타일.
함 : 무슨 일로 오셨나요?
나 : 피부에 뭐가 많이 나요.
함 : 어디 볼까요? (스탠드 켜고 보시더니) 여드름 입니다.
나 : 전부 다 여드름인가요? 모낭염이나 다른 피부염은 아닐지..... (짤림)
함 : 아닙니다. 전부 다 여드름입니다.
나 : 제가 최근에 벤조일 바르고 화상 입은 것처럼 벗겨졌는데, 이 부분 보시면..... (짤림)
함 : 아닙니다. 여드름입니다. 유전입니다. 10년 이상 되셨겠는데요? 평생 관리하셔야 합니다. 약먹고 약 바르시면 됩니다. 일단 약은 두 달 먹을 겁니다.
나 : 제가 안구건조증이 있어서 다른 피부과에서는 처방 안해주던데요.
함 : 안구건조증이 오면 눈물을 넣으면 되겠죠? 여드름 치료하려면 약을 먹어야 합니다.
나 : 제가 요즘 디페린을 바르고 있었는데 이건 계속 발라도 되는지..... (짤림)
함 : 발라도 지금 효과없죠? 바르지 마세요.
나 : 건조할 때 보습제 덧바르는 게 낫나요? 아니면 적당히 바르고 약간 건조하게 두는 게 낫나요?
함 : 마음대로 하세요.
나 : 네?ㅇ_ㅇ?
함 : 화장품은 마음대로 원하는대로 바르고 싶은거 다 바르세요. 화장도 하시구요. 먹고 싶은 것도 상관 없구요.
나 : 아 네.....
함 : 아이 계획 있으신가요? 임신 절대 안됩니다. 확실하게 피임하세요. 그리고 다른 종류 비타민이랑 먹지 마세요. 밥 먹고 즉시 약 먹으세요.
나 : 네....
함 : 한 달 뒤에 봅시다.
나 : 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름 복기해보니 처음에는 야심차게 질문하다가 어짜피 다 짤리고 너무 단호박으로 대답하시니까 뒤로 갈수록 뭔가 선생님 말에 그저 수긍하고 고개 끄덕이고 있던 나란 여자. 이래서 선생님 불친절하다는 후기글이 좀 있던 거구나 싶었지만, 나는 불쾌감 느낄 정도는 아니고 그저 치료철학이 뚜렷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기분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항상 애매하게 설명하던 다른 선생님보다 낫다고 느껴졌다.
진료를 마치고 나오니, 대기실에 갑자기 5-6명 정도 대기 인원이 있었다. 내가 타이밍을 잘 맞춰 온 듯.
진료실을 나와 접수처에서 이소트레티노인 동의서에 싸인을 하고 처방전을 받았다. 한 달치 처방전과 함께 진료비는 약 4만원 정도. 특별히 어떤 시술이나 검사를 한 것도 아니고 선생님과 5분도 안되는 대화로 4만원을 지불하려니 뭔가 비싸게 느껴졌지만, 이 분의 진료 철학을 믿고 정말 여드름 치료하고 싶어서 왔으니 이 정도 비용은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마음으로 쿨하게 결제했다.
이소트레티노인(제로큐탄), 크레오신티 처방
함익병 피부과에서 여드름 진료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처방 받는 먹는 약과 바르는 약. 바로 제로큐탄(로아큐탄 카피약, 예전에는 아큐네탄인가 처방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제로큐탄으로 바뀌었다)과 크레오신티.
제로큐탄 30알(하루에 한 알)과 크레오신티 두 병이 한 달치 처방. 진료비는 위에 언급한 대로 4만원이고, 약 값은 4만 9천원 정도 나왔다. 듣자하니 함익병 피부과 바로 옆에 있는 이 약국이 조금 비싸서, 다른 약국가서 처방 받는 사람들도 종종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그런 거 찾아다닐 여력이 없어서 그냥 바로 옆 약국에서 사왔다. 다음 달에는 조금 더 저렴한 약국 있는지 찾아봐야지.
크레오신티는 보통 한 달에 한 개 처방해주신다고 하는데, 나는 가슴과 등에도 바르라며 두 개 처방해주셨다. 크레오신티는 중, 고등학생 때 약국에서 처방 받아서 써 본 기억이 있긴한데, 그 때 효과가 있었나 없었나 별 기억이 없다. 제발 효과가 좀 있었으면 좋겠는데 ㅠㅠㅠ
이게 바로 이소트레티노인이구나. 내가 이 약을 안 먹고 치료해보려고 최근 4년 간 엄청 발버둥치고 '헛돈'도 많이 썼는데 결국 피부는 더 악화되어 여드름들에게 항복하고, 이 약을 처방 받았다.
인터넷에 떠도는 엄청난 부작용들은 잠시 못 본체 하고, 함익병 선생님 말 만 믿고 가야겠다. 전문의의 처방을 믿고 가야 내 피부 인생에도 꽃길이 열리지 않을까. 그리고 한약 환불 받고 다시 영양제 루틴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이 것도 중단해야겠다. 요즘 들어 거울 보는 것도 너무 힘들고, 사람들 만나고 노는 것 좋아하는 내가 방 안에 콕 박혀있으려니 마음이 어려워져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웬지 이 약은 날 구제해줄 것 같은 기분이다. 앞으로 결혼식들과 연말에 지인 만나는 이벤트, 행사가 정말 많은데, 제발 나 좀 살려주라.ㅇ_ㅇ